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가 일본 지진으로 첨단 브레이크와 조향장치 등 연간 550만개 규모의 주력 부품 생산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만도는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전자제어장치용 부품을 일본 이와테현에 있는 NCC공장에서 도입하는데, 이 공장의 가동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만도의 부품 재고량은 12일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본 NCC공장의 복구가 늦어질 경우 만도의 주력 부품 생산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만도가 생산하는 브레이크 및 조향장치는 현대·기아차 등의 주력 제품에 탑재되기 때문에 국내 완성차 생산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만도 관계자는 "일본 NCC공장이 언제 다시 가동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부품 공급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해도 테스트 과정 등 거의 1년 가까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만도는 국내 협력업체와 함께 14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으며, 부품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일본 현지에 자사(自社) 인력을 급파해 복구 과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대지진 피해 여파가 국내 산업계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부품 공급 채널이 다양하지 않고 일본 의존도가 높아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 의존 높은 중소기업 직격탄 맞아
자동차용 와이퍼 등에 들어가는 고무 부품 생산업체인 D합성은 14일 세 차례나 자재팀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평소 일본에서 합성고무 원료인 고급 폴리머를 수입해온 이 회사는 16일 약 20억원어치를 일본에서 들여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13일 거래하던 일본 기업은 항구가 폐쇄돼 선적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해 왔다. 이 회사 이모(46) 구매 담당 상무는 "평소 수입하는 원료의 약 30%를 일본에서 들여왔다"며 "수입선이 막히면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재고물량이 일주일에 불과하다"며 "이번 주 내 수입이 재개되지 않으면 다음주부터 생산물량을 최소 10%는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H사 이모(44) 사장은 다음주로 예정돼 있는 중남미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16일 급히 일본으로 출장을 떠날 생각이다.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시스템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H는 일본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로부터 시스템반도체를 도입한다. 그러나 이 회사가 일본 지진으로 가동 중단에 들어가자 반도체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 사장은 "최악의 경우 일본 업체로부터 부품 조달이 힘들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신모델을 다시 개발해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산업연구원 조철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제품들 중에는 일본 부품에 맞춰 개발한 것들이 많다"며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길게는 1~2년이 소모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부품 공급선 확보에 비상
현대·기아차도 14일 구매기획팀에서 비상대책 회의를 열었다. 현대차 본사의 구매본부 관계자는 "일본 부품 의존도가 낮지만 자동차산업 특성상 일본에서 오는 작은 부품 한 개라도 조달이 안 되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면서 "현재 일본의 몇몇 부품사는 아예 연락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계열의 부품 기업들은 일본 알프스전기·스탠리전기로부터 다양한 전장부품을 조달받고 있으나 현재 이 업체의 타격이 커 부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LG디스플레이도 웨이퍼와 필름 등 반도체와 LCD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공급선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특히 세계 1위의 실리콘 웨이퍼 생산업체인 신에츠반도체의 시라카와 공장과 2위인 섬코의 일본 내 공장이 조업 중단에 들어간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국내의 LG실트론과 웨이퍼 추가 주문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의 조업 중단이 장기화되면 국내 어떤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반도체 공급 부족현상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14일 대만의 반도체 현물시장에서는 PC에 많이 들어가는 주력 D램반도체 제품이 6.7%나 올랐으며, 스마트폰 등 휴대용 IT기기의 저장장치로 쓰이는 낸드플래시 가격은 무려 12.5%나 폭등했다. 반도체 가격이 이처럼 폭등하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은 수혜를 입지만 국내외 PC 등 IT기기 제조업체들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과거 반도체용 플라스틱 로진생산업체인'스미토모상사'의 화재로 국내기업은 한달이상의 납기차질을 빚은적이 있다.
